— Part 1에 이어서 —
처음 일을 시작했을 땐 어떠셨어요?
정말 힘들었어요. 마치 대학교에 막 입학했을 때 교수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몰라서 수업을 잘 따라가지 못했던 때처럼. 매일 출근해서 그날 일을 마치는 게 대단한 도전 같았죠.
특히 많은 직원들이 참석하는 회의라던가 제가 발표해야 하는 미팅이 있는 날이면, 회의실 들어가기 전에 구석에서 기도를 했어요. 지금은 회의 중 다투기도 할 정도로 여유가 많이 생겼지만. (웃음)
독일에서 자동차 회사를 다니며 기억에 남는 일화가 있다면 들려주세요.
일을 시작한지 3년쯤 지났을 때였어요. 당시 메르세데스-벤츠 디자인 부서에 있었는데, 윈드터널에서 테스트를 해야 했죠. 클레이로 만든 자동차 모델을 갖고 공기저항을 측정하는 거예요. 그곳에서 정신없이 일하다보니 어느새 저녁 7시가 됐어요.
그런데… 윈드터널에서 나와서 원래 일하는 사무실로 가려고 하니 출입이 불가능했어요. 생산 공장과 달리 기술개발센터는 저녁 7시 이후 출입이 안된다는 사실을 몰랐던 거죠. 어쩔 수 없이 외투와 핸드폰을 사무실에 두고 귀가했던 기억이 나요.
그만큼 치열했으니 한편으로는 스스로가 자랑스러울 것 같아요.
하루는 디자인 센터장이 지금 만들어지고 있는 자동차들을 아침 해가 뜰 때, 그 햇빛에 비추어 보고싶다고 해서 차량 모델들을 오전 6시부터 준비시켜놨어요. 그땐 정말 피곤함을 매일 달고 살았어요. 출퇴근길 지하철에서 곯아떨어지지 않은 적이 없었죠.
하지만 돌이켜보면 그 시절이 지금까지 일하면서 제일 보람됐어요. 당시 제가 참여했던 자동차가 3년 후 발표되고 지금도 도로 위를 달리고 있는데, 그 차를 볼 때마다 그때가 떠올라요.
힘들거나 속상할 때는 언제인가요?
지금 내가 처한 상황을 모르고 이야기한 말들에 상처를 받은 적이 있어요. 그때 마음이 많이 힘들었어요. 나에게 그런 말을 했던 사람도 나쁜 의도가 없다는 걸 알면서도 더 크게 낙담하게 됐죠.
슬플 때는 한국에 계신 부모님이 늙어가는 모습을 볼 때. 매주 한번씩 부모님과 통화하며 근황을 나누는데, 빠르게 흐르는 시간만큼 빠르게 늙어가고 약해지시는 걸 느껴요.
자주 만나뵙지는 못해도 오래오래 계시길 바라고 기도해요. 우리 부모님이 아프고 연약해지셔도 제가 이곳 독일 땅에서 해드릴 수 있는 게 없을 때 많이 슬퍼요.
또 가끔 제가 다른 사람을 사랑하지 못하고 무심결에 상처 준 사실을 깨달을 때도 마음이 많이 힘들어요.
‘왜 여러번 생각하고 조심하지 못했을까’ 하고 후회하죠. 그럴 때 마음의 무거운 짐을 가장 빠르게 내려놓을 수 있는 길은, 역시 그 사람에게 미안하다고 이야기하는 거였어요.
불안이나 우울을 다루는 현진님만의 방법이 있나요?
불안한 마음이나 우울감이 들 때 가장 먼저 하는 일은 하나님에게 의지하는 거예요. 그러면 제 안에 있는 두려움과 불안도 많은 위로를 받아요.
또 가장 가까이에 있는 아내와 이야기를 나누며 함께 산책할 때 많은 위로를 얻어요.
아내분과는 어떻게 만나게 되셨어요?
2008년 유학을 준비하며 독일어 공부할 때 어학원에서 처음 만났어요. 그때 제가 수강한 반에 아내가 있었죠.
아내는 매일 새벽예배를 마치고 학원에 왔기 때문에 항상 반에서 가장 일찍 강의실에 도착해 있었어요. 그 사실을 알고 저도 매일 조금이라도 더 일찍 강의실에 가서 아내와 이야기를 나누려고 했어요.
학원에서 함께 독일어를 배우고 독일에 나올 때도 서로 여러 정보를 주고받으며, 베를린에서 첫 유학을 같이 시작했어요. 서로 알게된 후 독일에서 교제를 시작한지 7년 만에 결혼해서 지금까지 함께하고 있어요.
개인적으로 애정하는 자동차 모델이 궁금해요.
‘메르세데스 벤츠 SL300’. 독일 자동차 회사에서 일하고 싶다는 꿈을 처음으로 꾸게 해준 자동차에요. 1954년에 만들어진 오픈카 형태의 로드스터 모델인데, 이 차를 보면서 ‘도대체…1950년대에 어떻게 이런 자동차를 만들 수 있었을까?’ 생각했어요.
이곳에서 일하면서 개인적으로 아주 좋아하는 자동차는 ‘아우디 TT’. 디자인뿐만 아니라 아우디의 아이콘과 같은 역할을 한 모델이에요. 만약 실생활에서 쓰는 자동차가 아니라, 여유가 돼서 정말 기분 내고 싶을 때 타는 차를 가질 수 있다면 저는 TT를 갖고 싶어요.
아예 불가능한 드림카가 아니라 더 좋은 것 같아요. (웃음)
취미나 관심사는.
자동차 관련 자료와 최근에 나온 책들을 읽어요. 자동차 모형을 수집하는 것도 좋아해요.
요즘은 AI(인공지능)에 관심이 많아요. 최근들어 회사 내부적으로 AI를 활용한 업무가 많이 늘었거든요. 이전에는 그저 재미삼아 몇번 쓰던 툴들을 실제로 제가 일할 때 적극적으로 활용하게 됐죠.
어떻게 하면 AI를 더 효율적으로 잘 활용할 수 있을지에 대한 궁금증이 많고, 이와 관련한 교육자료를 많이 보고 있어요.
그외에도 트래킹, 수영 등을 운동 목적으로 하고 있어요.
요즘 겪고 있는 고민이나 걱정에 대해 들려줄 수 있나요?
최근들어 인간관계 문제에 대해 종종 고민해요. 시간이 흐르고 점점 나이가 들어가면서 사람들과의 관계가 삶에서 가장 어려운 문제가 되는 것 같아요.
대학생 때만 하더라도 누군가와 사귀고 놀고 편하게 이야기 나누는 것이 어렵지 않았어요. 지금보다 훨씬 능청스러웠고 농담도 많이 했어요. 새로운 사람에게 다가가는 것도 두렵지 않았죠.
그런데 지금은 누군가에게 말을 건네는 일이 쉽지 않고, 같이 있어도 무슨 말을 해야 될지 모르겠는 상황이 많이 생겨요. 그럴 때마다 ‘시간이 지나면서 나의 사회성이 떨어지는 건가?’라는 걱정을 해요.
최근뿐만 아니라 주기적으로 하는 고민은 ‘나는 과연 언제까지 이곳 독일에서 일하며 살아갈까’인데요. 당장 다른 곳 또는 한국으로 돌아가겠다는 계획은 없지만, 이곳에서 지내는 시간이 오래될수록 이따금 생각하게 돼요.
독일에 나올 때만 해도 난 이곳에서 일하며 오래오래 있을 거라 다짐했는데도 불구하고…
독일에서 탄탄하게 자리 잡았음에도 왜 그런 고민을 하게 되는 걸까요.
아마 제가 이곳에서 여전히 이방인으로 살아가고 있기 때문인 것 같아요. 아무리 독일어가 익숙하고 일하는 데 불편함이 없어도 말예요. 사람들과 점심을 먹거나 커피를 마시며 대화할 때 여전히 편하지 않아요. 잘 섞여 있지 못하다는 마음이 들죠.
그렇다고 한국으로 돌아가는 것이 답인지에 대해서도 확신이 없어요. 독일이 내 나라가 아니기에 불편해서 한국으로 돌아간 사람들을 많이 봤어요. 하지만 한국에서의 삶도 힘들어 보이는 건 마찬가지예요.
결국 내가 어디에서 살고 있는지 보다, 어디에 살든지 나의 마음가짐이 중요하다는 생각도 해요.
독일의 수많은 직업과 산업군 중에서도 자동차 업계에서 엔지니어로 일한다는 것은, 분명 다른 많은 사람들과 비교했을 때 안정감을 주는 건 사실이에요.
하지만 지금 제가 속한 산업의 미래를 생각하면 이 자리가 늘 탄탄할지도 사실은 잘 모르겠어요. 따져보면 어떤 직업도 늘 100% 완전하고 안전하진 않을 거예요.
자동차는 변화가 많은 시장이에요. 오랜 세월 독일 자동차 산업이 줬던 신뢰와 명성 역시 이전과 같지 않은 모습을 보이고 있죠. 내가 정말 이곳에서 자동차를 만들며 꿈꿔온 일을 할 수 있을지 의심을 품게 해요.
딜레마는 ‘그럼 어디에서 살아가야 맞는 걸까’라는 고민이고, 언제나 저의 결론은 ‘최선을 다해 지금 내게 주어진 현재를 살아가자’로 맺어지는 것 같아요.
현진님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생각이 깊고 한편으로는 이타적인 사람 같다는 느낌도 들어요. 타고난 성격일까요, 아니면 어떤 계기나 노력이 있었을지.
사실 저는 교회를 다녀요… 오랜 시간 제 안에 자리 잡은 신앙의 힘인 것 같아요. 독일에 살면서 정말 힘들었지만, 제가 삶에서 크게 목표한 바를 이뤘고 지금도 매일 꿈을 꾸는 것처럼 멋진 자동차를 만들며 살아가고 있어요. 이런 현실 자체가 너무 감사하죠.
그런데 어느날은 내가 이 땅에서 이 일을 평생 하며 살다가 나중에 하나님 앞에 서면 많이 민망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내가 꿈꾸는 일을 찾아서 하긴 했지만, 평생 자동차 열심히 만들다가 왔다고 하면… 하나님도 그 사실 자체만으로는 크게 생각하지 않으실 것 같더라고요.
다른 사람을 위해 무언가를 도와준 일이 있다면, 자동차 이야기만큼 신나게는 못해도 자랑스럽게 말할 수 있지 않을까요.
인터넷상이나 주변을 보면 독일에서 학업과 취업 준비로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이 많아요. 그들의 상황이 제가 지나온 상황과 완전히 같진 않겠죠. 다만 저의 경험을 이야기해 주면서 비슷한 길을 걸어가는 사람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을 주고 싶어요.
그래서 베를린리포트(독일 내 한인 미디어 커뮤니티)에 어려움을 겪거나 질문을 하는 유학생들에게 코멘트를 달기도 하고, 브런치스토리(카카오의 글쓰기 플랫폼)에 저의 유학 및 취업준비 시절을 비롯해 독일에서 일하는 경험을 글로 써서 올리기도 했어요.
그 글들 덕분에 취업준비를 도와주는 한국 기관과 인연이 닿아 강연을 하는 기회도 얻을 수 있었죠. 지금은 매일 반복되는 평범한 일상을 살고 있지만, 제가 가진 것이 무엇이든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면 무척 좋을 것 같아요. 일의 성취보다도 더 보람될 거예요.
마지막 질문이네요. 지향하는 삶의 모습이 있나요?
나에게 주어진 매 순간을 헛되이 보내지 않았으면 해요. 때로는 이런 생각이 쉬어야 하는 때조차 뭐라도 해야 한다고 다그치는 것 같지만. 쉼이 필요한 시간에는 어느 정도 타협하고요.
또 제가 살아가는 삶을 통해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유익을 주고 싶어요. 제가 알지 못하는 사람들도 제가 살아가며 했던 말과 행동을 통해 유익을 얻었으면 좋겠어요. 그것이 그저 작은 기쁨일지라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