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소개 부탁드려요.
안녕하세요. ‘키위’입니다.
제 한국 이름과 발음이 비슷해서 독일 친구들이 지어준 별명이에요. 처음에는 내 이름이 이렇게 들릴 수도 있구나 하는 신기한 생각이 들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제 성격과 키위가 닮은 점이 많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키위의 달콤한 맛처럼 사람들을 좋아하고 유쾌하며 다정한 성격을 지닌 반면 그 신맛처럼 예민하고 여린 면도 있죠. 그래서 외국 친구들이 지어준 이 애칭이 더욱 마음에 들어요. 언젠가 한국으로 돌아가 키위를 마주치게 되면, 독일에서의 소중한 추억들이 마법처럼 떠오를 것 같아요.
키위님의 고유한 매력이 잘 드러나는 별명이네요. 독일에서 무엇을 하며 지내고 계시나요?
‘외국어로서의 독일어’ 석사 과정을 3년째 이어가고 있는 서른살 대학원생입니다.
처음에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느라 정신없이 시간을 보냈는데 어느 순간 공부 외에도 다양한 경험을 쌓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작년 한해 중국 친구들과 함께 학생회 활동을 했어요. 그 경험은 저에게 큰 의미가 됐고 학교에도 더 깊은 소속감을 느끼게 해줬어요.
지금은 인공지능을 주제로 졸업논문을 준비하고 있어요. 전공이 아니어서 어려움도 있지만, 새로운 지식을 하나하나 쌓아가는 과정에서 소소한 즐거움을 느껴요. 졸업을 향해 한걸음씩 천천히 나아가는 중이에요.
독일 유학을 선택한 이유가 있나요?
어렸을 때부터 외국어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던 제가 떠올라요. 말이 되는 안되든, 어디서나 혼자 영어로 주절거렸던 저의 모습이 기억나네요. 영어를 무척 좋아했어요.
수많은 외국어 중 독일어를 선택한 이유는 독일어가 영어랑 비슷하다는 이야기를 들어서였죠. 그렇게 대학교에서 독일어를 전공하던 중 교환학생과 인턴십을 통해 독일과 더욱 깊은 인연을 맺게 됐어요. 그 시간 속에서 희로애락을 경험했네요.
공부를 하면 할수록 독일어의 매력에 빠져들었고, 외국어를 더 잘 배우려면 그 나라에서 직접 공부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자연스럽게 독일 대학원에 진학했어요. 감사하게도 장학금을 받아 유학 생활에 큰 도움이 됐어요.
독일어의 매력은.
독일어는 다른 언어에 비해 영어랑 철자와 발음이 많이 일치해요. 처음에 다른 언어보다는 빠르고 쉽게 알파벳을 배울 수 있어요. 시작부터 어려움이 컸다면 배우기 겁났을 텐데, 첫걸음이 그나마 가볍다보니 나중에 어려운 부분이 나와도 좀 더 재밌게 공부할 수 있었죠.
특히 저는 ‘하우스마이스터 클라우제’라는 옛날 독일 코미디를 많이 봤어요. 물론 내용을 듣고 이해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실력이 따라야 하지만, 독일 콘텐츠도 재밌다는 사실을 알게 해준 드라마에요.
교환학생이나 인턴으로 독일에 왔을 당시 기억에 남는 경험담이 있다면 들려주세요.
교환학생으로 독일에 왔을 때 해당 대학교에 독일인 ‘버디’ 친구가 있었어요. 버디는 외국 학생들을 위해 독일 대학교에서 제공하는 프로그램이에요. 학교가 낯선 친구에게 캠퍼스 생활 등을 알려주는 학생을 버디라고 해요.
어느날 생일파티에 초대를 받아 그 친구네 집에 갔더니 한 10명 정도 되는 버디의 친구들과 함께 거실에 모여있게 됐어요. 당시 저는 독일어도 지금보다 못했던 데다 낯을 많이 가렸기 때문에, 유일한 외국인인 저에게 누군가 호기심으로라도 말 한마디 걸어주기를 기다리고 있었어요.
하지만 그들은 이미 서로 아는 사이여서 그런지 자기들끼리만 이야기를 나눌 뿐. 누구 하나 제게 말 걸어주는 사람이 없었죠. 한참을 그렇게 꿀 먹은 벙어리처럼 있다가 일찍 자리를 뜬 기억이 납니다. 참 나 자신이 바보 같고 소외감을 많이 느꼈던 슬픈 기억으로 남아있지만… 그런 경험들이 있기에 지금의 내가 있지 않나 싶어요.
다만 여전히 외국인 친구를 사귀고 상대하는 것은 어려운 일 같아요. 언어부터 다르다 보니 진짜 마음 깊이 소통하는 느낌이 없달까요.
키위님에게 ‘친구’란.
내게 없어서는 안되는, 아주 큰 힘이 되는 존재이자 내 인생의 원동력.
저는 정이 많아서 만나는 사람 한명한명 소중한 인연을 쌓고 싶어해요. 서로 즐거운 일과 슬픈 일을 나누고, 격려하고, 한바탕 웃으며 인생을 살아갈 수 있게 해주죠.
하지만 독일에 오고 나서, 또 나이가 들어가면서 연락하는 친구들도 줄고 연락 횟수도 줄어드네요. 결혼이다, 시차다 뭐다 해서요. 그러다보니 요즘은 인간관계에 회의감이 드는 것도 사실이에요.
특히 독일에서 다양한 친구들을 사귀면서 좋은 기억도 많이 쌓았지만 상처도 많이 받았어요. 안부 연락을 먼저 하고서는 며칠 후에나 답장하는 친구, 자기 궁금한 것만 물어보는 친구 등 이런저런 친구들을 만났죠. 친하게 지냈어도 나중에 자기 살던 곳으로 돌아가면 연락이 끊기는 일도 빈번하고요.
그럼에도 새로운 사람을 사귈 때 한번 맺어진 인연은 끝까지 좋은 인연이 되길 바라지만, 결국 뻔한 결말로 이어지게 될까봐 요즘은 예전보다 마음을 많이 안 주려고 해요. 나의 마음을 가장 잘 알아주고 이해해줄 것 같으면서도 한편으로는 가장 어려운 존재가 되기도 하는 것이 친구 같습니다.
독일살이가 힘들거나 불안할 때 어떤 방식으로 이겨내셨나요?
이겨냈다기보다는, 이겨내려고 여전히 애쓰는 중이라고 말하고 싶어요.
독일은 본래 외국이기에 언어와 문화, 사람들 모두 낯설고 이질적인 환경으로 가득찬 곳이에요. 이국적이고 낯선 환경이 큰 매력으로 다가오기도 하지만, 무의식적으로 사람을 계속 긴장 속에 놓고 많은 에너지를 쏟게 만들죠.
인턴이나 교환학생처럼 끝이 정해진 일로 독일에 있을 때와 언제가 끝일지 모르는 상황에서 있는 것은 마음의 부담이 그만큼 많이 달라요. ‘내가 잘 해낼 수 있을까’ 하는 자신에 대한 불확실함과 오후 4시면 어두워지는 우울한 겨울 날씨 속 원룸에 혼자 있노라면, 마치 세상에 혼자 남겨진 것 같은 기분이 들곤 했어요.
독일 유학이라는 감사한 상황임에도 ‘빨리 이 상황이 끝났으면…’ 하는 마음이 자주 밀려왔어요. 이 시기를 잘 극복하기 위해 심리치료를 받기도 했어요. 어려움을 맞닥뜨렸을 때 이겨내보고자 힘겨운 싸움을 해야 하고, 장기적으로 볼 때 꼭 해야만 하는 과제일지도 모르지만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죠.
상황을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소소하게 하면서 스스로 칭찬과 응원을 많이 해주세요. 오늘도 이렇게 먼 곳에서 혼자 하루를 보내고 있는 것만으로도 너무 수고했다고. 비록 오늘 하루가 내가 꿈꾸던 모습은 아니었을지라도 말이에요.
한국이 그립지는 않은지.
지금까지 독일에서 살아온 시간을 합하면 4-5년 정도 돼요. 솔직히 저도 제가 이렇게 외국에서 살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어요. 졸업 후에 한국에 돌아가고 싶은 막연한 마음이 생겨요. 외국 생활을 오래 하면 할수록 결국 내 고향이 제일 소중하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저에게 고향은 북극성과 같아요. 어떤 곳에서든 경험과 배움은 있을테지만 고향의 포근함과 익숙함은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특별한 가치를 지니죠. 결국 돌아가고 싶은 곳은 내가 태어나고 자란 그곳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독일은 철학의 나라이기도 하잖아요. 특히 와닿는 철학자가 있나요?
존 스튜어트 밀. 특별히 좋아하는 건 아니지만 독일살이를 하면서 유독 떠오르는 철학자네요. 여러 외국 학생들이 모여 사는 기숙사 생활을 하다보니 소음문제나 위생문제 등 불편한 상황들을 많이 겪어왔어요. 저 또한 누군가에게 의도치 않게 불편을 줬을지 모르겠네요.
존 스튜어트 밀은 『자유론』에서 자유란 자신의 생각, 말 그리고 행동 등이 다른 사람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을 때 절대적이라고 정의하고 있어요. 독일에 살면서 제 자유가 침해되는 상황을 많이 겪었어요. 자신의 욕구와 자유만 생각하는 사람들을 자주 접하다보니, 모든 자유가 존중받는 곳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추구하는 삶의 모습이나 좌우명은.
경제적, 심적으로 여유 있는 삶. 물론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다지만 저는 언제든지 제 가족, 친구들과 망설임 없이 원하는 것을 실현할 수 있는 삶을 살고 싶어요. 그러기 위해서는 마음의 여유와 경제적인 여유가 동반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물론 시간이 흐르면 제 생각이 달라질지도 모르죠. 처한 상황에 따라 지향하는 삶의 모습이나 좌우명은 끊임없이 변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저는 그것을 절대적인 가치로 삼기보다는 하나의 방향성으로 삼는 편이에요.
‘이 또한 지나가리라’ 예전에는 이 말을 좋아했어요. 어려움 속에서 위안 삼곤 했는데 한편으로는 너무 허무하게 들리더라고요. 막상 가장 힘들었을 때 이 또한 지나간다는 말은 저에게 잠시 견디기 위한 임시방편으로 들려왔어요. 시간이 해결할 수 없는 일도 있으니까요.
국어사전에 따르면 결국 좌우명이란 늘 자리 옆에 갖추어 두고 가르침으로 삼는 말이나 문구라고 정의돼 있어요. 저는 제 삶을 이끌어주는 어떤 하나의 고정된 규율이나 규범 대신, 살아가는 동안 맞닥뜨리는 순간순간의 상황 속에서 스스로 발견하는 가치를 옆에 두고 싶어요.
마지막 질문이네요. 꿈이 있나요?
저는 인생에서 커리어를 중요한 부분으로 여기는 사람이에요. 석사 과정을 마친 후 신중하게 고민해서 박사를 준비할까 해요. 궁극적인 목표는 대학 교수로서 강단에 서서 내가 좋아하는 학문을 많은 이들과 나누고 그 기쁨을 같이 느끼는 것.
나이가 들면서 ‘예전에 이렇게 했으면 더 좋았을 걸 왜 그랬을까’ 하는 후회들을 매 순간하면서도, 막상 현재에 있을 때는 또 나중에 후회할 만한 일들을 하는 것 같아요. 먼 훗날 인생을 되돌아봤을 때 ‘그래도 나 참 최선을 다해서 행복하게 잘 살았다’고 생각할 수 있는 것이 저의 꿈이에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