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텐더 무현, 유쾌하게 흔들고 깊게 채우다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오무현입니다. 만 28살이에요. 베를린에 온 지는 2년 반 됐네요. 

이곳에서 문화학(Cultural Studies/Kulturwissenschaft)을 전공하면서 유럽 민족학을 부전공으로 공부하고 있어요. 문화가 인류의 삶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 연구하죠.

그러한 변화의 과정에서 어떤 갈등이 발생할 수 있으며, 그렇다면 그 갈등을 어떻게 해소 또는 완화시키는 것이 바람직한지 탐구해요. 서양 인문학에서는 매우 광범위한 학문으로 여겨지고 있어요.

원래 목표는 영어권 국가에서 문화학 학위를 취득하는 거였는데, 경제적인 이유로 독일로 오게 됐어요.

그 분야를 선택하게 된 계기가 있나요?

2018년 한국에서 대학교를 다닐 때 좋은 기회로 유럽에 파견을 나갔어요. 첫 해외 경험이었죠. 그때 각각 다른 생김새, 다른 스타일, 다른 생활양식을 공유하는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는 일이 더이상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문화를 탐구하면 그러한 삶의 모습들이 보다 매끄럽게 굴러가도록 윤활유 역할을 할 수 있을 것 같았어요.

그외 관심사는.

위스키! 학교 다니기 전부터, 학교를 다니는 지금도 바텐더로 일하고 있어요.

예전부터 칵테일과 바 문화를 무척 좋아했어요. 베를린에 오기 전 뒤셀도르프에서 워킹홀리데이로 독일생활을 시작했어요. 그때 운이 좋게도 고급 레스토랑에서 일할 기회가 생겼죠. 어쩌다보니 그곳에 있는 기존의 바 직원을 밀어내게 됐고… 바텐더로서의 삶이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네요.

바텐더라니 정말 흥미로워요. 바에서 일하면서 기억에 남는 일화가 있다면 들려주세요.

한 아시안 손님이 바에 오신 적이 있어요. 서로 독일어를 잘하거나 독일에서 태어난 동아시아계 독일인이라고 생각해서 내내 독일어로 대화했어요. 그런데 알고보니 둘 다 한국인이었던 일이. (웃음)

또 주말은 워낙 바빠서 바텐더 4명이 일을 하는데, 어느날은 갑작스럽게 저 포함 2명뿐이었어요. 그날 손님으로 놀러온 바 대표가 하루종일 설거지만 하다 갔던 기억도 떠오르네요. 

그정도로 독일어를 습득할 수 있었던 무현님만의 방법이 있나요?

이제는 독일어를 한 지 총 4년 정도 됐어요. 바에서 사용하는 재료들을 한국어로는 잊어버리는 경우도 매우 잦아요. 저만의 방법이라고 할 건 없고, 무언가를 모른다는 사실에 스트레스를 받으려고 노력했어요.

제 스스로도 살면서 뭔가 잘해본 게 독일어가 처음이에요. 다른 이들의 특출난 능력과 거기에 투자된 시간과 노력에 비하면 크게 이룬 것은 없지만. 아직까지는 해본 건 다 되더라고요. 무언가를 도전하거나 꿈꾼다면, 해보세요.

가장 좋아하는 위스키는.

이 질문을 정말 자주 받아요. 답변하면 다들 놀라는데, 저의 최애 위스키는 언제나 ‘메이커스 마크’입니다. 괜찮은 가격, 니트로도 좋고 섞어도 확 튀지 않는 매력.

불안이나 우울이 찾아오면 어떻게 하나요?

새벽에 위스키 한잔. 긍정적으로 생각하기. 찰리푸스의 곡 <Through it all> 들으며 위로 받기.

현재 가장 큰 고민은 졸업하고 무엇을 할지예요. 학술적인 방면에서 아무리 노력해도 원어민 학생들보다 노력이 조금 더 요구되는 상황들에 가끔 무력감을 느끼고는 해요. 하지만 날씨 좋은 날 걸어다니기만 해도 다시 행복해지더라고요.

요즘 무현님이 품고 있는 기분이나 생각이 궁금해요.

얼마전 처음으로 한국을 다녀온 후 많은 생각이 들었어요. 2주 동안 한국에 있었는데, 너무 안타까운 일이지만 만났던 모든 친구들이 사는 게 어렵고 힘들다는 이야기만 했어요. 그날따라 하늘이 더 뿌옇게 보였던 것 같아요. 

최근에 집 근처 물가에 있는 새로운 산책길을 발견해서 그곳을 걷는 일이 무척 재밌다는 저의 이야기가 친구들에게는 잘 와닿지 않는 느낌이었죠. ‘한국인스러움’이 무뎌진 제가 너무 느긋한 건지, 친구들이 저보다 철이 빨리 들어버린 건지는 모르겠어요. 다만 짧은 시간 동안 감히 행복전도사의 역할을 수행하고 왔네요. 

베를린으로 돌아오고 나서는 조금 힘들었어요. 꿈속에서도 나오던 독일어가 괜히 이상하게 들리고 평소 해오던 바텐더 일도 다 잊어버린 느낌이었어요. 한국에서는 독일이 집처럼 느껴졌다가, 막상 돌아오니 이곳도 내 집이 아닌 것 같은 생각이 들더라고요. 조금 무서웠습니다.

그렇군요. 앞으로도 계속 독일에서 살 계획인가요? 

죽을 때까지 살진 않겠지만, 지금 만나는 여자친구와 결혼하게 되면 여기서 자리를 잡고 언젠가는 한국으로 같이 가기로 했어요.

여자친구분은 어떻게 만나셨나요?

좋은 질문이에요! 독일은 10월에 학기가 시작하는데요. 당시 학교에서 처음으로 사귄 친구가 할로윈 파티에 초대해줬어요. 코스프레가 싫어서 몇번 거절하다가 그냥 와도 된다는 말에 냉큼 갔어요. 

그때 제가 살던 집 하수도에 문제가 생겨서 물을 아예 쓸 수 없는 상황이었고, 심지어 샤워를 하려고 수영장 한달권을 구매한 적도 있어요. 할로윈 파티에서 새롭게 알게 된 친구에게 “오늘 너네 집에서 샤워해도 되냐”고 물어봤고… (중략)

추구하는 삶의 모습은.

술과 담배를 좋아하고, 단순한 동네 아저씨 같은데 멍청하지는 않은 사람.

이야기를 나눠보니 무현님은 유쾌함을 지닌 사람 같아요. 

감사합니다. 웃음은 참 웃겨요. 제일 싸게 살 수 있는데 제일 비싼 것들 중 하나인 것 같더라고요. 지금도 유쾌한 사람으로 남기 위해 노력하고 있어요.

벌써 마지막 질문이네요. 인생의 목표나 꿈이 있나요? 

한국어·한글을 보급 및 세계화하고 싶어요.

‘한국적인 것’이 특정 분야에서는 분명 세계적인 것으로 인정받는 경우도 왕왕 있어요. 그러나 영어가 세계 공용어로 통용되는 이상, 한국어 단어의 로마자화는 세계 무대에서는 피할 수 없는 숙명이라고 생각해요. 

단적으로 일본어의 경우 받침이 적고 로마자 알파벳들로 표기해도 원어의 발음을 비교적 그대로 전달할 수 있어요. 직관성 측면에서 장점을 갖죠. 반면 한국어의 모음 ‘ㅡ’, ‘ㅓ’는 특히 『국립국어원 – 국어의 로마자 표기법』에 따르면 각각  ‘eu’, ‘eo’로 표기되어야 하는데요. 이는 실질적인 발음과는 조금 거리가 있어요. 그래서 발음을 하거나 기억하는 데 어려움을 동반할 수 있어요. 

또 다른 예로는, 제 또래 남자들이라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텐데요. 독일 최고의 골키퍼인 마누엘 노이어(Manuel Neuer)를 마누엘 ‘노이에르’라고 했던 시절을 기억하실 겁니다. 파리의 ‘센’, ‘센느’, ‘쎈느’, ‘쎈’, ‘쎄느’ 강(La Seine)은 말할 것도 없고요. 

원어의 발음을 최대한 살려서 표기한다면 한국어로 검색을 할 때든, 외국에 나가 소통을 할 때든 교육적인 측면에서 시사점이 있다고 생각해요. 한국어·한글 보급 및 세계화를 위한 좋은 출발점도 되지 않을까 싶고요. 

물 들어오고 있잖아요, 저어야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