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과 사랑 있는 삶’ – 베를린, 테슬라, 그리고 테드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테드(Ted)입니다. 만 33살이에요.

베를린에 있는 미국 자동차 회사 ‘테슬라’에서 품질 엔지니어로 일하고 있어요. 자동차 부품을 납품하는 공급사가 여러곳 있는데, 그 부품들에서 품질 문제가 생기면 해결하고 개선 방안을 찾는 일을 해요.

와, 멋져요. 테슬라는 요즘 세계에서 가장 핫한 회사 중 하나잖아요. 

한국에서 자동차 공학을 전공했어요. 공부에 뜻이 있어서 대학교 졸업 후 유학을 가봐야겠다고 생각했죠. ‘자동차로 제일 유명한 나라가 어디지?’ 하다 보니까 당연히 독일로 오게 됐어요. 그때가 2016년이에요. 처음 독일에 왔을 때는 1년 동안 오롯이 독일어 공부만 했어요. 그런데 사람 인생이 계획한 대로 되지 않잖아요. 이후 2년 동안 어학 시험만 15번 정도 봤어요. 두 달에 한 번씩 시험을 치렀는데 계속 떨어졌어요. 

인생에서 제일 힘든 시절이었어요. 결국 원하는 어학 성적을 못 받았어요. 원래는 독일에서 가고 싶은 학교들이 있었는데 합격선에 미달했죠. 그때는 제 인생이 약간 중세시대 같은 느낌이었어요. 누군가 나에게 ‘3년 동안 뭐했어?’ 물으면 대답할 수 있는 게 없는 암흑기. 현실과 타협해 다른 학교에 들어갔어요. 거기서 그토록 원하던 자동차 공학 석사 과정을 시작했는데 코로나가 딱 터졌죠. 4학기 만에 학기를 끝내기 어려운 상황이 됐어요. 제 나이가 스물아홉, 서른 이때 즈음이니 최대한 학기를 빨리 끝내고 싶었는데… 그래서 그냥 그만뒀어요.

그만두셨다고요?

사실 저는 코로나가 터지기 전부터 학교를 관두고 싶었어요. 첫 학기에 제가 생각했던 공부가 아니라는 걸 깨달았거든요. 저는 학문에 뜻이 있었고 좀 더 양질의 공부를 하고 싶어서 유학을 선택한 거였어요. 그런데 상당히 괴리가 많았어요. 오히려 한국보다 더 주입식 교육이었죠. 제가 생각한 공부가 아니고 암기만 하고 있는 지경이었어요.

아무래도 똑같은 한 문장을 봐도 한국어였으면 그냥 이해하고 넘어가면 될 걸, 독일어 문장 자체를 외우고 있으니까 더 그랬던 것 같아요. 교육 시스템도 그렇고. 제가 독일 대학원 준비할 때 이런 이야기를 해준 사람이 아무도 없었어요. 다들 ‘학교 너무 좋아’, ‘독일 공대가 최고지’ 이런 말만 했죠. 그러니까 이런 환상을 품고 독일에 오려는 공학도 후배들에게 꼭 이야기해주고 싶어요.

맞아요. 현실은 상상했던 것과 다를 수 있죠.

차라리 외국 학위 자체가 필요한 사람들은 잘 해나가요. 하지만 저처럼 순수하게 공부를 좀 더 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맞지 않을 수도 있어요. 제 마음은 명확했는데 오히려 주변에서 걱정이 더 많더라고요. 

반대로 결단력 있고 대단하다는 사람들도 있었죠. 지난 3년 동안 쏟은 시간과 비용을 포기하는 것도 용기니까. 제가 한국에서 지방대를 나왔어요. 그래서 유학 간다고 했을 때 소위 ‘학벌 세탁’을 위해 간다는 시선도 있던 것 같아요. 제가 원하던 건 그게 아니었으니 결정할 수 있었죠. 

본인 스스로를 무척 잘 아는 것 같아요. 학교를 그만둔 이후로는 어떻게 하셨어요?

한국으로 바로 귀국했어요. 현실적으로 금전적인 부분만 아니었으면 계속 지냈을 텐데. 여태까지 나간 돈이 있으니 한국 가자마자 취직했어요. 자동차 회사는 아니고 계측 장비 회사에서 2년 정도 엔지니어로 일했어요. 그러다 독일로 다시 오게 됐죠. 여러 이유가 있는데, 우선 아쉬운 마음이 남아 있던 듯해요. ‘찍먹’만 하고 도망치듯이 온 기분도 들고. 3년이나 지내면서 유럽여행도 많이 못했죠.

그래서 ‘한번 다시 가보자’ 해서 갔는데 생각보다 직장을 쉽게 구했어요. 그때 테슬라에 입사한 건 아니고요. 우선 독일에 있는 한국 회사에 들어갔어요. 그나마 문턱이 낮으니까. 바이에른에 있는 자동차 부품 공급사였어요.

말이 쉽지 참 지난한 과정이었네요. 저는 한국 돌아가면 다시는 독일에 오지 못할 걸 알거든요.

그러게요. 지나고 보니 이렇게 쉽게 말할 수 있는 거네요. 서울에서 경기도 왔다갔다 하는 것도 아니고. 그런데 저도 학교 그만두고 떠났을 때 그런 생각이지 않았을까요? 모모님과 비슷한 마음이지 않았을까요. ‘나는 이제 독일에서 하고 싶은 것 다 도전해봤다. 끝났다.’ 이렇게 독일에 다시 올 수 있을지 몰랐어요. 

언어는 어떻게 준비하셨어요?

저는 지금도 스스로 독일어를 잘 못한다고 생각해요. 영어도 그렇고요. 대부분 사람들이 언어에 벽을 느끼고 자신감이 많이 부족하잖아요? 그런데 저는 커뮤니케이션의 문제지, 언어의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하거든요. 이 둘은 조금 다른 개념이라고 봐요. 

구직 상황을 예로 들어볼게요. 면접 때 회사 측에서 영어나 독일어로 뭘 질문했어요. 이때 나는 못 알아들을 수 있잖아요. 여기서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다…’ 하고 넘기면 이건 언어도 안되고, 커뮤니케이션도 단절된 거예요. 하지만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내가 잘 모르겠으니까 쉬운 단어로 말해줘’, ‘다른 방식으로 다시 설명해줄래? 그럼 내가 대답해볼게’ 이 상황은 언어는 부족할지언정 커뮤니케이션은 되고 있는 거예요. 

그런 자신감 있는 태도는 타고난 건가요?

그렇다기보다는 제 실력에 자신 있었어요. 일에서의 실력이 중요하지, 언어는 작은 부분이라고 생각한거죠. 저는 항상 스스로를 테스트하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내가 얼마나 그릇이 큰 사람이 될 수 있나 시험해보고 싶어요. 테슬라에 들어갈 때도, 들어가서도 부담감보다는 너무 신나더라고요. 여기서 내 그릇을 한번 테스트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으니까. 

저는 완전히 국내에서만 살았어요. 토익 시험조차 한번도 본 적 없어요. 언어를 공부라기보다 익혔던 방법은 음악이에요. 어렸을 때부터 팝송을 즐겨 들었던 것 같아요. 노래하고 악기 다루길 좋아하는데, 나도 부르고 싶으니까 자연스럽게 팝송 가사를 흥얼거리게 됐죠. 따로 공부를 위해 영단어를 외우진 않았어요.

취미가 음악인가 보네요.

독일에서 1년은 어학 공부하고 2년은 시험 보던 시절, 버스킹을 많이 했어요. 그때 저는 여행을 가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잘 다닐 수 있을지 고민했죠. 여행 가서 길에서 노래 부르면 돈이 나름 괜찮게 모였어요. 당시 30~40분 정도 공연을 하면 한 40~50유로를 벌 수 있었어요. 제가 낭만주의자적인 기질이 있어요. 기타, 앰프, 마이크 들고 다니면서 번 돈으로 하루 숙소와 끼니를 해결했죠. 낭만이잖아요.

정말 낭만 있네요. 또 버스킹 하실 계획 있나요?

요즘 한국사회에 낭만이 사라지는 이유가 ‘관종’ 이런 말이 생기고 나서 더 그런 듯해요. 좀 즐길 수 있는 건데, 마치 관심 받고 싶어서 저런다는 부정적인 시선들이요.

안 그래도 올해 한번 다시 해볼까 생각 중이에요. 그땐 제가 바이에른에 살았는데 테슬라로 이직하면서 베를린으로 왔거든요. 너무 하고 싶어요. 길거리 공연 하면 좋은 추억도 정말 많이 생겨요. 

한국 돌아가서 2년 정도 일했을 때는 직장인 밴드를 했어요. 독일에서도 밴드를 해보고 싶어요. 평일에 일 끝나고 연습해서 주말은 펍 같은 곳에서 공연도 하고. 페이는 안 받더라도 사람들이랑 공짜 술 마시면서요. 낭만 치사량이죠. 나중에 밴드 구인 공고 올라오면 저인 줄 아세요. (웃음) 

이렇게 주체적으로 사는 사람 오랜만에 봐요. 이런 테드님도 우울할 때가 있나요?

지금은 제가 하는 일 자체가 적성에 잘 맞고 재밌어요. 하루하루 일하러 가는 게 즐거워요. 정말 운이 좋게 동료들도 다 좋은 사람들이고요.

요즘은 괜찮은데 독일어 시험 계속 떨어졌을 때 진짜 힘들었죠. 사실 그때 기억이 거의 없어요. 너무 힘들어서 기억이 삭제됐나봐요. 스트레스는 극에 치닫고, 한국에 계신 부모님도 지치셨고… 무의식 중에 자해하는 것처럼 뭘로 제 몸을 막 찌르고 아프게 하고 있더라고요. 심각했죠. 그전까지 저는 우울증이나 무력감은 약한 사람들이나 느끼는 줄 알았어요.

독일에서 그런 말을 들은 적이 있어요. 어떤 이유에서든 여기서 5년 이상 버텼으면 그 사람은 어느 정도 내공이 있는 거라고요. 수긍이 됐어요. 여기서 5년 버티기 쉽지 않거든요. 특히 그 기간 지낸 사람들은 불안보다도 조금 더 심한 고독을 경험하는 것 같아요. 한국인으로서 독일에 완전히 소속되기가 어려우니까.

어두운 마음이 들 땐 어떻게 하세요? 

감정을 컨트롤 하려고 해요. 화가 나거나 슬픈 일이 있으면 우선 생각해요. 이성적으로 ‘이게 내가 화낼 일인가? 울 만한 일인가?’ 하고요. 아니라고 판단하면 감정적으로 굴지 않아요. 감성은 있는데 감정은 없달까요. 

옛날에는 이런 제 모습이 좋았는데 요즘은 반대인 사람으로 살고 싶기도 해요. 인간적으로 보이고. 한번 펑펑 울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마음 한 구석 어딘가에 있는 것 같아요. 사회적으로나 살아가는 데 있어서 제 성격이 편할 수는 있어요. 하지만 인생을 아름다움의 관점으로 봤을 때, 감정이 풍부한 사람들이 더 축복받았다고 생각해요.

행복하고 좋은 것들은 오히려 많이 표현하려고 해요. ‘오늘 옷이 잘 어울려요’ 이런 식으로 칭찬도 많이 하고요. 그런데 상대방이 이성적인 호감 표시로 오해하는 일이 종종 생겼어서 그후로는 안하려고 해요. 외국은 서로 칭찬하고 스몰토크 참 잘하잖아요. 그런 부분이 부럽더라고요.

공감해요. 저도 여기 살면서 자유함을 느낀 부분이에요. 남자, 여자로서가 아니라 인간 대 인간으로 서로를 애정어리게 대하는 것.

여기서는 남녀 상관없이 동료가 멋지게 차려입고 오면 ‘오늘 너 너무 핫하다’라며 띄워줘요. 그럼 그 사람도 괜히 포즈 한번 잡아주고. 참 유쾌해요. 기분 나빠하지 않고 좋은 의도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죠. 한국 사람들도 이런 부분에서는 조금 열렸으면 좋겠어요.

이 인터뷰집의 제목이 《정답은 없다, 이야기만 있을 뿐》인데요. 한국은 마치 정해진 길이 있고, 거기서 벗어나면 안될 것처럼 느껴져요.

이때 즈음엔 대학 졸업하고, 돈 얼마 모아서 결혼하고, 애 낳고… 한국에서의 스탠다드한 삶이 레이스 같다고 느껴요. 저도 처음 독일에 왔을 때만 해도 완전 스탠다드한 마인드의 한국인이었어요. 외국에서 양질의 공부를 하면 더 좋은 직장에 들어가고 돈을 잘 벌 수 있으니까. 

그런데 이곳에 살면서 다양한 가치관을 갖고 사는 모습들이 참 행복해 보였어요. 반대로 돈이 많고 학위가 좋아도 불행하게 사는 사람들도 봤죠. 경제력과 행복은 직결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독일에 있으면 이런 생각할 시간이 많잖아요. 날씨도 그렇고 ‘철학의 나라’라는 말이 너무 공감되죠. 

여기 살면서 인격적으로나 가치관이 많이 바뀌었어요. 그러다보니 이제는 한국에 있는 친구들과 만나면 약간 이질감을 느껴요. 친구들은 코인, 주식, 투자 이런 주제를 대화하니까 저 혼자 뜬구름 잡는 이야기 한다고 볼테고요. 요즘은 나의 삶을 영위할 수 있고, 손님을 대접할 수 있을 정도의 경제력이 있으면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추구하거나 지향하는 삶의 모습이 있나요?

사랑하는 삶. 내가 죽기 직전에 무엇을 떠올릴까 생각해보면 결국 인생에서 사랑하고, 사랑받은 기억이거든요. 죽을 때 내 옆에 뭐가 있으면 좋을지 생각하면 그건 돈은 아닐 거잖아요. 사랑을 많이 나누고 받을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 이게 제가 추구하는 모습이에요.

생각해보면 연이은 시험 불합격보다 더 힘든 시기를 경험했어요. 독일에 있는 한국 회사 다닐 때였죠. 당시 같이 일하던 매니저가 폭언, 욕설로 점철돼 있는 사람이었어요. 매일 몇시간 동안 쌍욕을 들었어요. 그냥 제 삶이, 일상이 박살났어요. 정신을 다 갉아먹었거든요. 

저는 천주교인인데 주기도문을 보면 이런 말이 있어요. ‘우리가 우리에게 잘못한 이를 용서한 것 같이 우리 죄를 용서하여 주세요’ 갑자기 이 가르침이 와닿더라고요. 내가 이 사람을 용서해야 나도 나중에 용서받을 수 있는 자격이 생기는 거구나. 어느 순간 이런 생각이 들면서 그 사람을 마음속으로 완전히 용서했어요. 그러자 일상이 다시 평온해졌어요. 

그런데 저는 이걸 종교의 힘이라고 표현하고 싶지는 않고요. 가르침에서 가장 큰 키워드가 ‘사랑’이에요. 용서하는 것도 결국 사랑하는 마음인 거죠. 그 이후로 모든 사람에게 항상 친절하고 사랑으로 대하려고 노력해요.

테드님만의 이야기 들려주셔서 감사해요.

다들 인생이 드라마잖아요. 제 인생도 그렇게 특별한 건 없지만, 그래도 하나의 드라마니까.